[월드리뷰] 동유럽과 남유럽이 교차하는 ‘루마니아’(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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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곡창지대…친서방노선 관계개선 주력”
서유럽으로 다수 이민…2007년 ‘유럽연합에 가입’
루마니아 정교회! ‘독립교회’ 독자적 관할권 행사
1947년 ‘미하이 1세 폐위되고 1948년 인민공화국
1989년 민주혁명! 독재자 차우세스쿠 형장 이슬로
● 한반도 크기를 상회하는 국토면적
루마니아(Republic of Romania)는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동쪽으로는 몰도바(Moldova), 서쪽으로는 헝가리와 국경을 접한다. 루마니아의 대부분이 세르비아와 불가리아(Bulgaria)에 인접하며 다뉴브(Danube) 강이 통한다. 유럽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삼각주를 이루는 다뉴브 강은 몰도바 공화국과 접하는 프루트(Prut) 강과 연결되며 흑해로 흘러간다.
루마니아는 동유럽과 남유럽이 교차하는 위치에 있다.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 지방은 중앙유럽으로 분류되고, 남부의 ‘왈라키아(Walachia)’와 흑해에 접한 ‘도브루자(Dobrogea)’ 북부 지방 등은 남유럽으로 분류된다.
‘트란실바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오랜 헝가리 지배의 영향으로 헝가리와 게르만 문화, 종교적으로는 가톨릭과 칼뱅파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 ‘왈라키아’는 오스만 특유의 종교적 관대함에 정교회를 유지할 수 있었고, 문화적으론 지배국인 튀르키예(터키, 2022년 6월 국호변경)와 주변의 남슬라브 및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같은 나라고 같은 언어를 쓰는 민족이지만 험준한 카르파티아(Carpaţi) 산맥을 기점으로 동과 서는 다른 문화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카르파티아 산맥은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에서 폴란드 남동부와 우크라이나 남서부까지, 남동쪽으로는 루마니아 동부에서 세르비아 남동부까지 계속 뻗어있는 산맥이다. 루마니아 동부에서 세르비아에 이르는 부분은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으로 불린다.
유럽에서는 12번째로 큰 국가 루마니아의 국토면적은 한반도 보다 큰 238,391㎢이고, 수도는 부쿠레슈티(Bucureşti)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루마니아는 산과 언덕 30%, 평야 70% 가량이며 사막은 없다. 평야의 대부분이 비옥하여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린다. 덧붙이면, 중동의 산유국보다 먼저 루마니아의 유전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구는 1,929만(세계은행 2020년)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액 GDP는 12,896.09(세계은행 2020년) 달러이다.
루마니아 인구는 2,000년대 초만 해도 2,300만 명 정도였으나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루마니아는 1990년대부터 대대적인 이민의 물결이 불었고, 언어적으로 비슷한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서구권으로 다수 이주하였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독일로의 이민이 급증하면서 1,900만 명까지 인구가 줄었다. 스페인에 90만여 명, 이탈리아에 140만여 명 가까이 루마니아계 이민자들과 그 자손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영국에도 40만여 명, 독일에는 113만여 명의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루마니아 사람은 인근 국가 몰도바에도 2백만 여명이 거주하며, 우크라이나에 40만여 명, 세르비아에도 6~7만여 명이 거주한다. 이 외에도 알바니아, 불가리아, 북마케도니아, 그리스, 튀르키예에도 전통적인 루마니아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루마니아인의 비율은 89%이고, 소수민족의 비율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루마니아인 다음으로 많은 민족은 헝가리인이며, 그 비율은 6.5%인데 거의 대부분이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거주한다.
공용어는 루마니아어, 독일어, 헝가리어이다. 루마니아어가 모어(母語)인 국민은 전 인구의 91%이며, 6.5%는 헝가리어를 사용한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루마니아의 주요 외국어인데, 특히 프랑스어인 경우엔 루마니아가 ‘프랑코포니(Francophonie)’ 회원국이라는 점에 영향을 받고 있다.
루마니아는 EU 국가 내에서 종교색이 강한 나라이다. 인구의 90%가 정교회 신자임을 자처할 정도이며, 무종교인은 극소수로 전체 인구의 0.1%에 불과하다. 루마니아정교(86.7%), 가톨릭 (4.7%), 개신교(3.2%) 순 등이다.
오늘날 발칸반도에 있는 동방 정교회 중 가장 규모가 큰 ‘루마니아 정교회(Ortodoxă Română)’는 루마니아에 소재하는 동방 정교회 독립교회이다. 공산정권이 붕괴된 후에도 루마니아 정교회는 국가통합에 공헌하는 국민종교로서 국가적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루마니아 정교회는 1885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에 의해 독립을 인정받았고, 1925년 총대주교로 승격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루마니아 정교회의 관할 구역은 인근 국가 몰도바, 루마니아 전역, 세르비아와 헝가리에 거주하는 루마니아인 교구와 서유럽, 북미, 오세아니아의 루마니아인 기독교 공동체를 포괄한다.
루마니아에는 로마 가톨릭 신도들도 존재한다. 루마니아 로마 가톨릭 신도들은 대부분 헝가리계 소수민족 주민이 많다. 0.3%에 불과한 이슬람교는 오스만 제국 시절에 이주해온 튀르키예인, 그리스계 무슬림, 불가리아계 무슬림, 알바니아인, 보슈냐크인, 쿠르드족의 후손들이 신봉하고 있다.
● 동서유럽 국가들과 관계증진…‘유럽연합’ 가입
루마니아는 1989년 12월 반체제 봉기를 통해 1990년 개방과 시장경제를 표방한 공화국체제로 변화하였다. 루마니아의 정치 체제는 국가원수으로서의 대통령권한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총리가 존재한다.
의회는 상원인 ‘루마니아 원로원(Senatul)’과 하원인 ‘루마니아 대의원Camera Deputaţilor)’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원인 루마니아 원로원은 임기는 4년으로, 137명의 의원이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하원인 루마니아 대의원은 329석을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를 병행하여 선출하고 있다. 상하원 모두 같은 날에 선거를 실시하며 43개의 선거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따라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
총리는 2021년 11월 취임한 ‘니콜라에 이오넬 치우커(Nicolae-lonel Ciuca)’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1번은 중임 가능한 5년이다. 현재 제6대 대통령은 ‘라우스 요하니스(Klaus Iohannis)’가 맡고 있다. 2014년 12월 21일부터 2019년 12월 21일까지 첫 번째 임기였으며, 2019년 12월 21일부터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후부터 대통령은 특정 정당에 속할 수 없다.
루마니아는 대외적으로는 중도우파를 자처하며 민족·영토 문제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헝가리·구소련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관계 정상화에 노력하는 한편, 경제개혁과 시장경제 체제 전환을 위해 1990년 이후 서방으로의 접근 및 인근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주력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1955년 유엔에 가입하고, 1970년대 초반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세계통화기금(IMF)·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가입하였다. 루마니아는 2006년 10월 개최된 EU집행위에서 루마니아는 불가리아와 함께 2007년 1월 1일 EU가입이 최종 확정되었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EU가입을 계기로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 등 선진 EU국가의 고임금 노동시장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EU기업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경제와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루마니아는 북한과 1948년 11월에 수교했다. 한국과는 1990년 3월 30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1994년 3월 I일에는 대통령 일리에스쿠, 2001년 외무장관·상원의장이 방한하였다. 주루마니아 대사에는 2022년 3월 임갑수 대사가, 주한 루마니아 대사에는 2021년 10월 ‘체자르 마놀레 아르메아누(Cezar Manole Armean)가 부임했다.
덧붙이면, 우리는 루마니아 하면 1976년 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은 앳된 소녀 체조요정 ‘나디아 엘레나 코마네치(Nadia Elena Comănec)’를 자연스레 떠올린다. 동유럽 국가 중 유고슬라비아와 함께 1984년 당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 때 참가한 나라이기도 하다. 루마니아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대거 불참했던 1980년 소련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도 참가하였는데, 이로서 동유럽 공산국가 중 유일하게 두 올림픽 모두 참가한 나라로 기록되었다.
● 1948년 ‘루마니아 인민공화국’ 수립
루마니아는 1947년 12월 30일에 소련군에 의해 최후의 국왕 ‘미하이(Mihai) 1세’ 폐위로 군주제가 종식되면서, 이어 1948년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65년에는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국호를 고쳤고,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가 당 제1서기가 되었다.
차우셰스쿠는 소련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며 소련의 위성국가이기를 거부한다는 자주노선을 내세워 동·서 양(兩)진영의 군사 블록 해체를 호소하는 등 전방위(全方位) 외교로 국가이익과 주권을 독자 행사해 왔다. 챠우세스쿠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소련의 ‘개입’을 비난하였고, 이로 인해 서방세계로부터 영웅 칭송과 경제적 원조를 획득했다.
1965년 집권한 차우세스쿠는 1989년 12월 민주혁명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24년 동안 루마니아를 무소불위 통치하면서 그 일가를 당과 정부의 요직에 임명하여 족벌체제를 구축하여 강권통치를 행사하였다. 차우세스쿠는 국민들을 국민을 친위대와 도청으로 감시하고 억압해온 철권독재의 대명사였다.
1980년대 후반, 당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쵸프의 등장으로 미국은 더 이상 루마니아의 필요성이 상실되었으며, ‘가장 친애하는 국가’로서의 위치가 자동적으로 소멸되었다. 차우셰스쿠는 급증하는 국가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루마니아의 식량을 수출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국민들은 생필품 부족으로 고통 받으면서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빵, 계란, 밀가루, 기름, 소금, 설탕, 고기, 감자 등은 철저히 배급제로 전락했다.
1989년 11월, 당 대회에서 차우셰스쿠가 당 서기장으로 6번째 재선되면서 국민들의 반정부 의식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1989년 12월 17일 헝가리와의 국경지대인 티미쇼아라에서 민주화 선봉에 선 헝가리계 개신교 ‘라슬로 퇴게시 목사’의 구속에 거센 항의 시위가 촉발되었다. 그것을 시발로 전국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정부는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탄압했다. 결국 차우세스쿠는 전격 체포되어 공개 처형되면서 정권은 붕괴되었다.
루마니아 구국위원회는 같은 해 12월 26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였던 ‘이온 일리에스쿠(Ion Iliescu)’를 중심으로 신정부를 구성하였다. 이어 1990년 1월 공산당의 해체와 함께 공산당 정치국원들을 전원 투옥시킨 가운데 다당제 도입, 사형제 폐지, 토지 분배, 주5일제 근무, 종교의 자유 인정 등을 골자로 하는 혁신안이 공포되었다.
1990년 5월 총선거 후 1991년 12월 신헌법을 확정하였고, 1992년 10월의 총선에서 일리에스쿠 대통령이 73%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수많은 폭동과 시위를 거쳐 1996년 11월, 비공산당계 시민의회 후보인 ‘에밀 콘스탄티네스쿠(Emil Constantinescu)’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공산정권이 무너진 지 7년 만에 민주 인사가 첫 정권을 잡게 되었다.
출처 : 서울일보(http://www.seoul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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