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뷰] 동유럽과 남유럽이 교차하는 ‘루마니아’(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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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산유국…한국과는 방산-백신 협력”
05년 바세스쿠대통령! ‘06년 노무현대통령 상호방문’
‘우크라이나 사태 국방력 대폭확대’ 한국과 방산협력
동유럽 IT 강국…중동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산유국
‘흑해 인접’ 러시아·터키 등과 연결되는 물류 요충지
(서울일보/소정현 기자)
◆ 동유럽 IT 인프라 강국…90년초 한국 대대적 투자
2007년 6월 14일, 당시 주 루마니아 최일송 대사는 내일신문에 기고문을 통해 루마니아 경제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일곱 번째로 많은 2200만 인구와 4억5,000만 유럽연합(EU)시장, 북쪽의 우크라이나, 흑해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터키 등과 연결되는 물류의 요충지다. 루마니아의 가치와 밝은 미래는 외국인직접투자 급증이 잘 보여 준다.
우리에게는 루마니아가 고작 ‘코마네치’, ‘드라큘라’ 정도만 생각나는 낯선 나라겠지만 루마니아 사람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 대해 친근감, 나아가 고마움을 표시하는 루마니아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1990년대 초 대우가 루마니아에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산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가운데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2005년에는 루마니아의 바세스쿠 대통령이 한국을,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루마니아를 국빈 방문해 한국에 대한 루마니아의 관심은 최고조이다.
루마니아는 또 다른 면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있다. 높은 교육열과 가족 간 유대를 중시하는 점도 우리와 비슷하다. 두뇌도 우수해 수학올림피아드와 국제과학경시대회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동유럽에서 루마니아는 유럽 내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뿐 아니라 인구 수 대비 가장 많은 IT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 덕분에 루마니아는 유럽 내 IT분야 다국적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웃소싱 대상 국가이다. 또한 태블릿PC 시장에선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이 아닌 자체 개발 브랜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루마니아가 유럽 내에서 IT 아웃소싱 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많은 IT 기술자와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수준 때문이다. 여기에 루마니아인들의 뛰어난 어학실력 역시 한몫하고 있다. 1989년 공산정권 붕괴 이후 러시아어 대신 영어를 배우고 자란 세대들은 영어가 매우 능숙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9년 7월 3일, 조청식 수원시 제1부시장이 ‘수원의 날’ 행사장 방문에 앞서 루마니아 제2의 도시 클루지나포카(Cluj-Napoca) 시청에서 에밀 복(Emil Boc) 시장을 만나 ‘자매도시 20주년’ 기념패를 전달식을 하고 있다.
◆ 한국과는 ‘방산-백신 협력’ 우호증진
현재 루마니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안보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급격한 국방력 강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 인접국가인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인접 국가들의 급격한 군비확장 속에 루마니아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루마니아는 올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5% 수준으로 증액했으며, 향후 3.0%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루마니아 올해 국방비는 70억 달러로 그 중 40%인 28억 달러(약 3조원)가 무기구입 예산이다.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군 장비 현대화를 위해 무기구입 예산을 매년 큰 폭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바실레 든쿠(Vasile Dncu)’ 루마니아 국방장관이 지난 9월 23일 한국을 방문하여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회담하고 양국의 국방·방산분야 협력확대를 협의했다.
폴란드, 슬로바키아의 한국산 무기도입 소식에 이어 루마니아도 한국과 국방분야의 협력을 합의하고 ‘한·루마니아 국방협력증진 의향서(LOI)’에 서명하면서 “한국의 K9자주포와 K2흑표전차 구입을 희망하고 있다”고 루마니아 현지 언론이 9월 26일 보도한바 있다.
독일의 전차등 많은 경쟁모델들이 있지만 우크라이나전 등으로 인한 급박한 위기 국면 속에 신속한 배치가 가능한 생산능력과 기존 시스템과의 상호 운용성, 저렴한 가격, 우수한 성능 등이 한국산 구매의 장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인접국가와 협의를 통해 부품수급과 정비 등의 운용비용 절감의 이득도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루마니아를 공식 방문 중인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8월 8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상원에서 ‘알리나 슈테파니아 고르기우’ 상원의장 직무대리와의 회담을 시작으로 상·하원 외교위원장 접견, 루-한 의원친선협회 접견 등 두루 일정을 소화했다.
김 의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방력 강화와 에너지 안보에 집중해온 루마니아 의회 지도자를 두루 만나 방산·원전 분야 실질 협력 강화를 위한 세일즈 외교를 펼쳤고,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지원 외교에도 협력을 부탁했다.
한편, 한국 정부와 루마니아의 백신 협력으로 화이자 백신 105만3천회분과 모더나 백신 45만회분 등 코로나19 백신 총 150만3천회분이 국내로 들어왔다. 화이자백신은 구매이고, 모더나백신은 루마니아가 한국에 공여하되, 우리 쪽은 루마니아가 필요로 하는 의료물품을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021년 9월 1일 브리핑에서 “한국과 루마니아 정부 간 백신 협력을 통해 화이자 백신 105만3천회분, 모더나 백신 45만회분 등 모두 150만3천회분이 2일과 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고 밝힌바 있다. 루마니아의 백신 공급 과잉은 ‘루마니아 국민들의 정부 기관에 대한 불신,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 확산 등을 이유로 백신 거부 현상이 확산한 결과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앞지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구의 상당수가 시골에 살고 있어서 백신 접근성이 낮다는 점도 낮은 접종률의 원인으로 꼽았다.
2020년 3월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이해 우리나라가 루마니아에 진단키트를 제공하는 등 적극 지원한 것이 루마니아 정부에서도 상당히 고마움을 표했던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이번 백신협력을 통해 양국 간 협력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2018년 9월 29일,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이 루마니아를 방문해 ‘카트리나 마리아 마누엘라’ 통신정보사회부 차관과 전자정부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중동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산유국’
니콜라에 치우카 루마니아 총리는 2022년 6월 28일 흑해의 루마니아 영해 내에서 천연가스 채굴을 시작했으며 이는 루마니아의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발표했다. 치우카 총리는 ‘미디아( Midia) 천연가스 개발계획’의 성공을 축하하는 이 날 가스유전 출범식에서 “루마니아가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결정적 걸음을 시작했다. 지난 30년 동안 흑해 가스전 개발사업을 추진해 온 결과 루마니아 에너지산업의 쾌거를 이뤘으며, 앞으로 연간 1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생산해 장래 90%의 국내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루마니아 정부는 새로운 흑해 연안 가스전 개발사업이 공식 시행됐으며, 인근 해역에서 검출된 지뢰 등 우크라이나의 전쟁 위험에도 불구하고 가스를 추출할 계획이다. 루마니아 국회는 오랜 세월 계속해온 흑해에서의 가스 및 석유개발을 한층 가속화하기 위해서 5월 중순께 ‘흑해연안개발법’(Offshore Bill)을 통과시켰다. 루마니아는 이번 법안 통과가 2,00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흑해에 대한 투자를 재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디아 천연가스 개발계획’은 루마니아 해안에서 120km 거리의 수심 70m 해역에 가스전 5군데를 개발해 천연가스를 생산하도록 되어 있다.
EU 집행위원회 에너지 총국의 발표에 따르면, 루마니아가 올해 1/4분기 EU 내 2위의 가스 생산국인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EU 전체 가스 생산량은 23%가 감소한 상황에서, EU 내 최대 가스 생산국은 네덜란드이고 2위 루마니아, 3위 독일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루마니아 현지 매체인 ‘jurnalul’은 루마니아가 2016년부터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하고 국내 생산량 의존도를 높이는 등 가스 수급정책에 변화를 주고 전한다. 이렇듯, 루마니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중동부 유럽에서 가장 많지만, 주요 가스 허브 지역으로 거듭나기 위해 장기적인 가스 수급 정책에 박차를 가해왔다.
루마니아가 중동지역에 앞서 세계 최초의 원유생산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루마니아는 미국(1860), 러시아(1863), 멕시코(1901), 페르시아(1913)에 앞서 세계 최초의 원유생산국으로 공인되고 있다. 루마니아 국가는 미국보다 3년 빠른 1857년에 원유를 생산하여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선 최대의 산유국으로 부상했다.
‘2020년 9월 9일자 아틀라스뉴스’는 이런 팩트 뉴스를 생생하며 실감 있게 전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루마니아는 연합국의 편에 섰다가 석유를 노리는 독일의 침공을 받았다. 연합국인 영국은 독일이 기름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루마니아 정부에 원유 생산시설을 파괴할 것을 강제했다. 루마니아는 주저했지만, 영국은 원유시설 파괴에 따른 보상도 제공하겠다고 확약했다. 루마니아 정부는 영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1,500개의 유정과 1,000개의 시추시설을 파괴했다. 정유공장 70곳과 탱크에 저장된 원유 80만 톤이 전소되었다.
제2차대전 당시엔 입장을 바꿔 독일편에 기름을 제공했다. 이번엔 독일에 석유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 공군의 대대적인 폭격을 당해 생산시설이 초토화되었다. 전쟁 막판에 연합국으로 돌아섰으나 원유시설은 소련에 빼앗겨 버렸다. 종전후 루마니아에서 생산된 원유는 물론 석유 채굴시설과 기계가 소련의 전리품으로 강탈되었다. 석유 생산시설은 국유화되어 소련과 루마니아 합작회사 ‘소브롬페트롤(Sovrompetrol)’에 편입된 것이다.
이처럼, 최초의 산유국 루마니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석유 자원전쟁의 쟁탈지가 되어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019년 현재 루마니아는 연간 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며 세계 산유국 순위 30위로 밀려나 있다.
원래 루마니아에선 고대부터 석유가 분출되었다. 5~6세기에 프라호바(Prahova) 지방에서 지표면에 역청이 흘러나온 기록이 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역청을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처럼 건축자재 또는 의약품 등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어 원유 채굴 갱은 카르파티아 산맥과 카르파티아 만곡부에서 처음으로 굴착되었는데, 중력을 가해 원유를 채집하고 태양열에 노출시켜 가스를 제거하고 기름을 선별했다. 16세기 중반에는 정제기술이 개선되어 셰일암에서 추출한 원유를 뜨거운 물에 넣어 뜨게 하고 나무 스푼으로 석유를 분리해 냈다.
1857년에는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루마니아의 수도)에서 북쪽으로 5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플로이에슈티(Ploie?ti)에서 대규모 정제설비가 만들어졌다.
테오도르와 마린의 ‘메헤딘테아노(Mehedin?eanu) 형제’가 세운 라포프 제련소에서, 쇠로 만든 원통에 원유를 부어 넣고 나무로 불을 지펴 정제했다. 이들 형제의 정제 장치는 세계 최초의 원유정제설비로 기록된다. 이들 형제는 왈리키아(Wallachia) 왕국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자신들의 제련소에서 생산한 등유를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부쿠레슈티는 1857년 4월 1일부터 등유 램프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세계 최초다.
20세기 들어 루마니아 왕국은 본격 석유 채굴에 나섰고, 1912년에 300개의 유정이 시추되었다. 스탠다드오일 등 미국 자본도 루마니아 유전으로 몰려왔다. 유전지대에 철도도 부설되었다. 철도 길이는 1870년 173km에서 1916년 1,300km로 확장되었다. 석유 채굴과정에서 나오는 가스를 이용하기 위해 파이프라인은 1880~1915년 사이에 1,335km나 개설되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루마니아는 석유산업으로 인해 동유럽에서는 가장 발달한 산업국가가 되었다.
출처 : 서울일보(http://www.seoul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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