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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90년대 체제 전환과 2000년대 루마니아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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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5-03-1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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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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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선 박사     ©브레이크뉴스

오늘은 루마니아 현 정권과 조르제스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기에 독자의 이해를 위해 1989년 차우셰스쿠 정권의 몰락과 민주화 이후, 2000년대까지 포스팅하고, 2000년대에 현 정권에까지의 내용은 이틀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루마니아의 현 대통령은 공석이다. 이전 대통령은 클라우스 요하니스(Klaus Iohannis)로 11년을 루마니아의 권좌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같은 루마니아 체제를 이해하려면 루마니아의 정치 권력 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989년 12월 25일 차우셰스쿠가 실각하고 1990년 개방과 시장경제를 표방한 공화국 체제로 변화했다. 루마니아는 정치 체제를 프랑스식을 참조하여 공산정권에서 민주정권의 공화국 체제로 변화했기 때문에 거의 프랑스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국가 원수으로서의 대통령 권한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총리가 존재하는 형태이고 의회는 상원인 루마니아 원로원과 하원인 루마니아 대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마니아의 대통령 임기는 5년이며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1989년 민주화 시위 이전까지는 간접선거로 선출되었지만 시위가 성공한 이후부터는 직접선거와 결선투표로 선출한다. 직무가 정지될 때이거나 공석인 경우 루마니아 원로원이나 루마니아 대의원의 의장이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현재 2025년 2월 12일에 요하니스의 임기가 종료되고 조르제스쿠와의 연관하여 선거가 무효된 이후, 현재 루마니아 원로원이나 루마니아 대의원의 의장인 일리 볼로얀(Iliiy Boloyan)이 권한 대행을 맡고 있다. 

 

루마니아의 원로원에는 소수민족 정당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루마니아의 선거법에 따라 소수민족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제정된 것이다. 루마니아 원로원은 하원 선거에 한해 봉쇄 조항이 적용되지 않게 일종의 특례를 주었다. 기독교의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고 헝가리인, 세케이인, 독일인, 슬라브인들이 산재하는 루마니아의 특성상 당연히 필요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루마니아에 별로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은 민족들의 정당들도 의회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트리아농 조약으로 인해 루마니아에 잔존하게 된 헝가리인과 집시들은 물론이고, 독일인, 알바니아인, 튀르크인 및 도브루자 타타르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마케도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루신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등 많은 민족들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고 있다. 물론 헝가리계 정당인 루마니아 헝가리인 민주연합을 제외하면 1석 정도 차지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다양한 민족을 포용했던 과거 "로마제국"의 선례에 따라 다민족 체제를 인정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특이하게도 루마니아 왕국 시절의 왕가가 그대로 유지되며 예우를 받고 있다. 이 점은 프랑스와 다른, 영국과 비슷한 점이긴 한데 이는 왕가가 소련에 의해 강제로 축출되었고 루마니아 왕국의 왕이었던 미하이 1세 등의 노력으로 인해 왕가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왕가는 루마니아에서 민족주의의 구심점이자 상징이다. 소련에 의해 축출되었지만 그래도 왕가는 소련에 저항해 루마니아의 민족적 자존감을 수호하려 했던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루마니아 정부는 왕가를 소련에 저항한 독립운동, 즉 루마니아 민족주의 상징으로 부상시켰고 이는 장기적으로 왕정 복고를 추진하기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많은 루마니아인들이 옛 왕실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며 왕가에 대한 존경을 바치고 있다. 그럼에도 왕정 복고를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왕실에는 호의적이지만 그래도 정치는 공화정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6년에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3가 1989년 혁명 때 공화정이 아니라 군주제를 선택했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라가 발전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당장 국민투표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물었을 때, 응답자의 62%가 공화정 유지, 21%가 왕정복고를 선택했다. 따라서 왕가는 그저 존경의 대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전통과 현 시대를 합작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 루마니아는 이처럼 대통령의 행정부, 국회, 그리고 왕가까지 모두 정치권에 들어가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1989년 민주화 시위 성공 이후, 루마니아의 민주화를 이룩했던 지도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따라서 국가의 미래에 관한 세 가지 비전을 공유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공산주의 이전의 역사와 정치 상황으로의 복원에 있다. 따라서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역사를 지우고 이전의 왕정과 의회가 존재했던 형태로 돌리려 했지만 이는 사회주의 공화국 당시의 혜택을 자들, 그리고 왕정과 의회는 중근세 시기로 회귀한다며 반대하는 자들이 늘어나 결국 무산되었다. 두 번째는 자유주의를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자유주의 천명의 해법은 자유선거를 정착시키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는 유럽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EU 가입, 군사적으로는 나토에 가입해 다가오는 러시아의 위협을 막는 것이다. 

 

1994년 부다페스트 협약에 의한 우크라이나의 핵 폐기는 루마니아에게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기에 나토 가입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를 위한 사회 공학적 프로젝트의 실현이다. 하지만 구국전선(Frontul Salvării Naţionale)이라 불리는 민주화 세력이 변질하기 시작했고 대학광장에서는 저마다 목소리를 부르짖는 등,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되었음에도 혼란스러운 소요 상황은 지속되었다. 1990년대 정치 상황은 매우 암울한 상태였고 옛 공산주의자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차우셰스쿠 처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군부조차도 통합을 보이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의 민주화는 매우 더디게 다가오고 있었던 상황이 당시였고, 이는 2000년 초중반까지 이어져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다. 체제 전환의 루마니아는 한편으로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와 관행을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 경제 체제를 수립해야 하는 이중 목표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지만 대통령인 이온 일리에스쿠(Ion Iliescu)는 막연한 뜬구름만 잡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 변환은 ‘대의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사이의 정책, 이어 신자유주의 이념의 도입과 정착, 민주화와 시장 경제로의 전환에 관한 사회적 합의 등을 전제로 하고 있었기에 쉽지 않았다. 

 

이러한 체제 전환은 1990~1996년의 중요한 고비를 이끌어가야 했던 이온 일리에스쿠(Ion Iliescu)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였으나, 역사적인 현실로 볼 때 훨씬 더 복잡했고, 예측할 수 없는 비공식적 규칙이 난무하면서 더 큰 혼란을 불러왔다. 루마니아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첫 대통령인 이온 일리에스쿠(Ion Iliescu)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6년 권력에 대한 최초의 민주적 이양이 이루어졌던 에밀 콘스탄티네스쿠(Emil Constantinescu) 대통령을 시작으로 2002년 아드리안 너스타세(Adrian Năstase) 수상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과도기의 종료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정치적인 선언이 이어지고 이에 대한 시행착오가 반복되면서 민생은 지옥이 되고 정치권 혼란은 계속된다. 물론 체제 전환기 사회에 있어 과거 공산주의 이념과 독재가 남겨 놓은 온정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완전히 파쇄해야 했다. 이에 대해 가장 중요한 변화로 이어진 것은 독재와 같은 단원 체제에서 다원 체제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때부터 국가 원수으로서의 대통령 권한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총리가 존재하는 형태로 굳어졌고 의회는 상원인 루마니아 원로원과 하원인 루마니아 대의원으로 분리되어 확고한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어 대중매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이루어지면서 언론의 자유화가 진행되었고 이동권을 개방하면서 루마니아 시민들이 각지로 이주하는 것도 자유화 되었다. 그리고 유럽으로의 복원하는 일에 착수해 사회 변화의 급진적인 가속화를 가져오면서 2000년대 들어 조금씩 혼란이 수습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2007년에 타결된 루마니아의 EU 가입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완전한 민주 체제의 전환이 이루어졌음으로 간주되었다. 루마니아는 사회주의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시 유럽과 공식적으로 연결되면서 서유럽화를 계획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과정은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했던 루마니아 시민들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출처: (주)브레이크뉴스(https://www.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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