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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루마니아 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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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3회 작성일 23-12-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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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원시림에 갈색곰·늑대 최대 서식지

사냥꾼 조합, 매년 200마리 수렵개체 조절

파크 레인저 매일 먹이 제공해 마을 침범 방지

인간 탐욕 앞에 서식지 지키며 공존할 수 있길

image                                  아름다운 마을 브랩. 김남희 여행작가

 

지난달에는 방과후 산책단과 함께 보름간 루마니아에 다녀왔다. 루마니아는 우리에게 낯선 나라다. 드라큘라 백작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기계체조 선수 코마네치, 축구팬이라면 ‘발칸의 마라도나’로 불렸던 게오르그 하지 정도가 더해질까.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난해 처음 루마니아를 찾았다. 루마니아는 빼어난 자연과 잘 보존된 전통문화로 나를 사로잡았다. 목조 교회나 채색 수도원, 산간 마을의 전통문화 못지 않게 루마니아의 자연이 준 감동도 컸다. 루마니아는 유럽 최대의 원시림을 보유한 나라이자 갈색곰과 늑대의 최대 서식지다. 그래서 산책단 프로그램에도 두 번의 트레킹과 곰 투어를 넣었다. 우리는 브라쇼브 외곽의 피아트라 크라이울루이 국립공원 근처로 향했다. 이번 루마니아 산책단의 하이라이트는 ‘곰을 찾아 떠난 하루’. 작년에 이 투어를 하면서 받았던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보통은 브라쇼브의 곰 구조 센터를 찾아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돼 센터에 머무는 곰을 만나지만 우리는 야생의 건강한 곰을 만나겠다며 사전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숲을 찾아갔다. 이 지역의 전설이 된 가이드 단과 함께.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던 어느날, 단은 마을 게시판에 나붙은 공지를 보게 된다. 시라소니 연구를 위해 이 마을에 찾아온 독일 학자들이 통역 겸 가이드를 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영어가 가능하고 주변 숲의 생태계를 잘 아는 지역 토박이가 필요했는데 단이 적임자였다. 그는 독학으로 익힌 영어가 훌륭했고 이곳 국립공원에 자리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숲을 돌아다니며 주변 식물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쌓아온 터였다. 그는 시라소니 연구팀과 3년을 일하면서 생태계와 야생동물에 대한 지식을 쌓아 갔다. 거기에 더해 2년 간 와일드라이프 가이드 자격증과정을 마쳤다. 마을에서 13명이 함께 공부했지만 직업적으로 야생 탐사 가이드가 된 건 단이 유일하다. 단은 루마니아 최고의 가이드로 뽑히기도 했는데 그의 딸 다나도 가이드의 길을 가고 있다. 작년에는 그의 일정이 맞지 않아 딸 다나와 함께 이 투어를 했는데 올해는 그와 함께하게 돼 기대가 더 커졌다.

 

image           김남희 여행작가

공산주의 시절 루마니아에는 COTA라고 불리는 야생 곰 개체수 조절 프로그램이 있었다. 국가가 관리하는 모든 숲과 산을 1만3천㏊ 규모로 나눠 사냥꾼 조합에 10년씩 임대했다. 사냥꾼 조합은 숲을 관리하고 지키는 동시에 곰이 적정 개체수를 넘어가면 사냥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조합은 주로 외국인에게 곰 한 마리당 1천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트로피 헌팅’권을 팔았다. 그 방식으로 1년에 400~450마리의 곰 사냥이 가능했다. 루마니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후인 2007년부터 문제가 생겼다. 곰이라고는 아예 없거나 몇 마리 안 되는 대부분의 EU 국가 입장에서 곰은 보호해야만 하는 대상. 당연하게도 그들은 루마니아의 곰 사냥을 반대했다. EU의 규제로 인해 곰은 절대로 죽일 수 없는 대상이 됐다. 루마니아의 곰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루마니아에는 고속도로가 거의 없다.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흑해로 가는 두 시간 남짓한 구간만 있을 뿐. 고속도로가 없는 덕분에 산이 끊기지 않아 광대한 영역을 필요로 하는 곰들이 빠르게 번식해 갔다. 곰은 순식간에 적정 개체수의 두 배인 8천마리로 불어났다. 먹이가 부족해진 곰이 도시로 나와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마을의 양 떼나 과수원을 습격하는 일도 생겨났다. 지난 4년간 시민 17명이 곰에게 물려 죽기도 했다. 결국 루마니아 환경부 장관이 EU 각국의 환경부 장관을 루마니아로 불러 모았다. 루마니아의 현실을 보여주고 곰을 나눠 가짐으로써 고통 분담을 하자고. 당연히 다른 나라의 장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난색을 표했다. 수많은 난상회의 끝에 결국 올해부터 EU는 루마니아에서 200마리의 곰 사냥을 예외적으로 허가하기로 했다.

 

image                       루마니아 북부의 목조 교회. 김남희 여행작가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너도밤나무의 껍질에 붙은 곰 털을 만져보며 곰의 나이나 체구를 상상하고, 곰의 똥을 들여다보며 아침식사가 뭐였는지를 추측했다. 늑대의 발자국을 들여다보며 개의 발자국과 구별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단은 마주치는 숲의 나무와 야생화, 야생버섯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어느새 간식시간. 단의 아내가 만든 엘더베리 주스와 생강빵이 어찌나 맛있던지 다들 감탄이 이어졌다. 작년에 단의 딸 다나와 이 투어를 하는 동안 맛있게 먹었던 너도밤나무 열매가 올해는 보이지 않았다. 너도밤나무는 6~7년을 주기로 해갈이, 예외적으로 열매를 많이 맺기, 평작을 반복하는데 올해 이 숲의 너도밤나무들은 열매를 하나도 안 맺었다. 이 열매는 곰이 아주 좋아하는 먹이라서 올해 너도밤나무 열매가 없다는 건 곰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올 가능성이 커졌음을 뜻한다. 마을과 산이 내려다보이는 양치기 캠프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산을 내려왔다. 이번에는 차를 몰아 야생 곰에게 먹이를 주는 곳을 찾아갔다. 특수 코팅된 유리로 만든 건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곰을 기다리는 곳이다. 마침 딱 맞는 시간에 찾아간 덕분에 파크 레인저가 곰 먹이로 비스킷 한 자루를 뿌리고 있었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곰들이 나타났다. 어느새 일곱 마리. 작년에는 한 시간 반을 기다려 두 마리를 봤는데 올해는 들어가자마자 단체 미팅이라니 고마울 수밖에. 곰과의 거리는 직선으로 20m 남짓. 망원경을 쓰지 않아도 곰의 표정까지 생생히 보였다. 이 숲에는 60여마리의 곰이 있고 파크 레인저가 매일 먹이를 주는 곳은 세 곳이다. 그중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 바로 이곳으로 매일 20~25마리의 곰이 간식을 먹으러 찾아온다. 공산주의 시절에 시작된 곰 먹이주기는 야생의 생태계에 최소한으로 간섭함으로써 곰이 마을로 내려오는 일을 막아준다. 실제 간식의 양은 곰이 필요로 하는 하루 먹이의 5%도 되지 않는다. 경이로우면서도 안쓰럽고,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뒤섞인 채 곰들의 ‘먹방’을 훔쳐봤다. 저 곰들은 인간의 탐욕 앞에서 제 서식지를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부디 루마니아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곰들과의 공존을 이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숲을 떠났다. 어디선가 먼 곳에서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출처: 경기일보(https://ww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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